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

 

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일본어번역)

 

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

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한국어 원본)

四君子 繪畵의 정신은 文人畵에서도 骨髓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사군자 그림을 보면 고결한 志操의 정신을 표현되어 있어 뜻은 다 통하게 되어있다. 사군자는 삼국의 지성인들인 문인들이 추구하던 문화로서 각국의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교양이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현대의 엘리트들과 마찬가지 지성인으로서 추구하는 표상은 君子의 세계였다. 군자는春秋 戰國時代 때부터 추구하였다. 문인은 항상 붓을 가지고 글씨를 썼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을 文人畵라 한다. 文人畵는 전문화가가 그린 작품과는 다른 문인들이 정신인 추구하던 象徵性이 그림에 들어있다. 이 상징성이 선비들이 苦難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동양 3국에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군자를 하는 문인화가가 많다. 작고한 작가뿐만 아니라 삼국의 現代作家들까지 병행하여 전시회를 해 나간다면 四君子 繪畵로 인해 동양 삼국의 문화의 소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사군자 식물의 전시회를 화기에 맞춰 해나간다면 사군자의 세계가 살벌해지는 삼국이 서로 상생하는 길로 변화를 여는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君子란?
한국과 일본, 중국은 지식의 교류가 많았다. 비록 시간과 공간, 지질과 풍토와 언어가 달랐지만 삼국은 뜻이 통하는 한자를 사용하므로 써 서로가 소통이 원할 하였다.
儒學은 일찍이 삼국의 지도 이념으로 자릴 잡았다. 儒家적 사회를 이상으로 하면서 학문의 목표인 修身齊家를 하고, 治國平天下를 이루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이루는 사람을 君子라고 하였다. 군자라는 말은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의 기준으로 덕을 길러야 하고 지성을 추구하고 공부를 꾸준히 하는 인격자였다.
儒學이 根本理念이 가장 잘 나타나있는 ‘論語’에는 2만 여자 밖에 안 되는 책이지만 ‘君子’라는 단어가 100번이 넘게 나올 정도로 ‘군자’는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부터 문인 士大夫들이 추구하던 목표이기도 하였다. 군자라는 말이 가장 유행한 때는 중국의 전국시대에 능력이 있는 사람의 이름에 君자를 붙였다. 濟나라에는 孟嘗君, 衛나라의 信陵君, 楚나라에는 春申君, 趙나라에는 平原君이 유명하였다. 각기 재주 있는 사람의 덕망을 높이 받들어 3,000여명 이상의 食客을 扶養하였다. 위의 4인을 사군자라고 불렀다. 문인들이 그리는 畵材인 식물에도 군자와 걸맞는 풍모가 있어 군자로 표현했다. 그 대표적인 네 가지 식물이 竹, 蘭, 梅, 菊이었다.
대나무는 2,500여년 전에 孔子가 편찬한 詩經이란 책에 君子라고 이미 의인화가 되었고, 蘭은 주유천하를 마친 공자가 故國으로 돌아가다가 계곡에 피어있는 난꽃을 만나 깨달았다. 이때부터 蘭은 儒家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다. 매화와 국화도 그들이 갖는 상징성으로 군자로 불리게 된 것이다. 明나라 문인화가 陳繼儒는 춘추전국시대의 군자의 표상이었던 네 사람,, 孟嘗君, 信陵君, 春申君, 平原君처럼 梅蘭菊菊을 사군자라고 命名했다. 이 후 문인들은 사군자를 그리는 것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 영향은 우리나라, 일본에도 그대로 유행이 됐다. 삼국의 문인들은 追求하는 象徵性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2) 文人이란
한국, 중국, 일본은 書齋를 중심으로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다. 이 서재를 文房이라 부르고, 문방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보통 文人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고 후세의 시, 희곡 , 소설을 하는 문학자와는 다르다.

3) 文人畵와 四君子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 부터 글을 공부하여 붓과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공부하는 사람은 文人으로 불렀으며 문인들은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利用하여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이를 文人畵라 한다. 文人畵는 專門畵家와는 다른 정신을 추구하여 그림 속에 그 절개를 담는 그림의 화재를 찾아 君子를 붙여주었다. 그래서 찾은 네 가지가 사군자이다.

4) 四君子의 象徵性
梅花, 蘭草, 菊花, 대나무의 네 가지 植物을 소재로 해서 水墨으로 그리는 사군자가 특히 사랑받는 이유는 화재가 함축한 상징성 때문이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꿋꿋하게 제일 먼저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어내어 꽃 중에서 가장 고결하여 맑은 기상을 선비들이 좋아하였다. 난초는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향기를 퍼뜨려 청초함이 빼어나 높은 지조있는 선비들이 좋아했다. 국화는 가을의 찬 서리와 눈에도 그 지조를 지켜 늦게까지 피어 정절을 지키는 지조 높은 선비들이 좋아했다. 대나무는 곧은 줄기에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는 변함없는 절개로 참다운 삶의 구도자인 君子의 精神에 비유되었다. 이런 상징성이 문인들을 사군자에 더욱 매진하게 했다.

5) 사군자 그림의 의미
사군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의 선비 즉 교양 있는 지성인으로서 품성을 배양하고 인격적인 가치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전통예술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인과 화가를 이해하고 풍류를 아는 엘리트의 한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나무와 꽃이 있지만 ‘君子’로 불리는 것은 오직 梅, 蘭, 菊, 竹뿐이다. 춥거나 덥다고 시절을 타서 한꺼번에 변하는 다른 식물과는 달리 시류에 타협하지 않는 기개가 지향하는 선비의 기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그린 그림은 그림 자체가 완벽한 것이다. 즉 아무리 작은 점이나 짧은 선도, 큰 획이나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불결이었다. 이것이 상생이다. 사군자 화가들이 그린 그림 중에 어떤 아주 작은 점이라도 빼면 그림이 망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사군자의 정신이다.

6) 사군자 박물관이 제주에 설립되어야 하는 이유
제주는 유배를 온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당시 빼어난 문인들이었다. 그래서 사군자의 상징성과 어울리는 인물들이다. 그중 김정희는 문인화의 대가였고, 특히 난을 잘 그렸다. 현대의 사군자 그림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모전만 해도 년 간 30여회가 넘는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과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사군자는 식물로서 원예가치가 높은 고전 원예식물이다. 고전 원예 식물 중에 제주의 난은 향기 좋은 寒蘭과 小蘭, 春蘭 그리고 野生蘭이 풍부하여 蘭의 寶庫라고한다. 또한, 대나무 역시 자생하고 잘 자라며 梅花 역시 꽃을 잘 피우고 菊花는 山菊이 한라산을 향기로 뒤덮는다.
제주에는 四君子 식물을 심으면 越冬을 염려할 필요가 없이 잘 자란다. 서귀포시는 寒蘭 自生地가 유명하여 西歸浦市花는 한란이 된 것은 70년대부터이다. 늦가을에 갖는 한란 전시는 인기가 대단하다. 또한 국화의 계절이면 국화 전시로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른 봄에 춘란 전시는 삼국이 동일하게 인기가 최고이며 매화 피는 시기의 축제 또한 인기가 높다. 이렇듯 그림은 그림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각 나라마다 전시회를 갖고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상당한 인구가 몰려다닌다. 제주의 돌과 난과 대나무, 梅花와 菊花가 어우러진 조경으로 博物館을 짓고 그 박물관을 사군자 그림으로 채우고 관람을 시킨다면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풍광과 함께 사군자 예술품이 세계 속의 보석이 될 것이다.

7) 박물관 활성화를 위한 고려 사항
고객은 한국 일본 중국 3개국 모든 관람객과 문인화를 이해하는 세계인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상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이 녹아있는 예술상품을 원한다. 그러므로 사군자 박물관이 갖춰야할 첫 번째 덕목은 우수한 작품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우수한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군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 사군자의 전통과 유래, 훌륭한 작가, 그리고 상징성 등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장소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장을 마련하여 직접 교육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다면 작품에 대한 욕구나 호기심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 박물관에는 사군자 식물이 돌과 어우러진 조경으로 정원 자체만 감상해도 사군자를 연상하고 좋아할 수 있는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일본어 번역본)

四君子画の精神は、文人画の真骨頂というべきものである。たとえ言語は異なっても、四君子画に込められた高潔な志操の精神は、見る者全てに伝わり通じるものがある。四君子は三国の知性人である文人らが追求した文化であり、各国の士大夫(昔の教養人)が持っていた共通の教養だったからだ。
文人は現代のエリートと同じく知性人であり、追求する対象は君子の世界だった。君子は春秋戦国時代から追求されてきた。文人はいつも筆で文字を書いた。そして余裕があれば絵を描いた。これを文人画と言う。文人画は専門画家が描いた作品とは異なり、文人が精神を追求した象徴性が絵に込められている。この象徴性が、ソンビ(昔の教養人)が苦難を乗り越えていく力になったのだ。
東洋三国には歴史的に素晴らしい芸術家の作品だけではなく、今も四君子を描く文人画家が多い。故人となった画家ばかりでなく、三国の現代画家まで同時に展示会を行ったら、四君子画によって東洋三国の文化が通じ合うだろう。さらに、四君子の植物の展示会を草花に合わせて催せば、四君子の世界が、ぎくしゃくとなりがちな三国を共生共栄の道へと導く鍵になるかもしれない。
1)君子とは
韓国と日本、中国は知識の交流が盛んだった。たとえ時間と空間、土地と風土と言語が異なっても、三国は意味が通じる漢字を使うことで円滑に意思疎通ができた。
儒学はかつて三国の指導理念によって確立した。儒教社会を理想にしながら学問の目標である修身斉家(自分の行いを正しく家庭をととのえ)、次に治国平天下(国家を治め天下を平和にする)を成すのが目標だった。これを成す人を君子と言った。君子という言葉は、孔子が考える理想的な人格の基準に徳を積まねばならず、知性を追求して常に勉強する人格者だった。
儒学の根本理念が最もよく現われている「論語」には、約2万字しかない本にもかかわらず、「君子」という単語が100回以上出てくるほど、「君子」は中国の春秋全国時代から文人である昔の教養人が追い求めた目標でもあった。君子という言葉が最も流行った時は、中国の戦国時代に能力がある人の名前に「君」の字を付けた。済国では孟嘗君、衛国の信陵君、楚国では春申君、趙国では平原君が有名だった。それぞれ才能ある人の徳望を高く崇めて、3,000人以上の居候を養った。上述の4人を四君子と呼んだ。文人らが描く素材としての植物にも君子にふさわしい風貌があったため君子と表現した。その代表的な四種類の植物が竹、蘭、梅、菊である。
竹は2,500年前に孔子が編纂した詩経という本に、既に君子と擬人化されており、蘭は天下周遊を終えた孔子が故国に帰る途中、谷に咲いている蘭の花に出会って悟った。この時から、蘭は儒家を象徴する植物になった。梅と菊の花も、それらの持つ象徴性により君子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明国の文人画家である陳継儒は、春秋戦国時代の代表的な君子とされた四人、孟嘗君、信陵君、春申君、平原君のように、竹蘭梅菊を四君子と命名した。この後、文人らは四君子を描くことにますます熱中するようになった。その影響は、韓国、日本にも伝わり流行した。三国の文人らは、追求する象徴性が同じだったからである。

2) 文人とは
韓国、中国、日本は書斎を中心に文化が発展していた。この書斎を文房といい、文房にいる人を普通文人と呼んでいる。とは言っても、これは後世の詩、戯曲 、小説を書く文学者とは違う。

3) 文人画と四君子
君子になるためには、幼いころから読み書きを学び筆と共に生活することが当然なことだった。勉強する人を文人と呼び、文人は文章を書くだけではなく、暇を見つけては絵を描いたが、これを文人画という。文人画は専門画家とは異なる精神を追求して、絵の中にその精神を込める素材を求め、それを君子と名づけた。このように見出された四種類が四君子である。

4) 四君子の象徴性
梅、蘭、菊、竹の四種類の植物を素材にして水墨で描く四君子が特に愛される理由は、素材の草花が含む象徴性のためである。梅は早春の寒さに負けず、たくましく最初に花を咲かせて香りを漂わせ、花の中で最も高潔で清い姿がソンビ(昔の教養人)に愛された。蘭は深い谷にたった独り香りを放ち、極めて清らかで、志の高いソンビに愛された。菊は秋の霜と雪にも志操を守って長い間咲き続け、貞節を守る志の高いソンビに愛された。竹は真っ直ぐな幹で一年中緑色を保っているところが、変わらぬ志で真の人生の求道者である君子の精神に比喩された。このような象徴性が、文人を四君子に邁進させたのだ。

5) 四君子画の意味
四君子を理解するということは、現代のソンビすなわち教養ある知性人として品性を身につけ、人格的な価値を絵で表現することができる伝統芸術を習得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さらに、文人と画家を理解して、風流の分かるエリートの一人になるということである。
世の中に幾多もの木と花があるが、「君子」と呼ばれるものは、梅、蘭、菊、竹だけである。これらは、寒かったり暑かったり時代によって一変する他の植物とは違い、時流に妥協しない気概を良しとするソンビの気質を現わしているのだ。これを描いた絵は、絵自体が完璧とされる。すなわち、どんなに小さな点や短い線も、大きな線と同じく不可欠なものだった。これが共生である。四君子画家が描いた絵の中から、どんなに小さな点でも欠ければ絵は台無しになる。これが四君子の精神だ。

6) 四君子博物館が済州に設立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
済州は流刑で来た人が多かった。彼らは当時ずば抜けた文人だった。そのため四君子の象徴性にふさわしい人物だったといえる。なかでもキムジョンフィは文人画の大家で、特に蘭をよく描いた。現代の四君子画は、韓国の場合、公募展だけでも年間30回以上開かれる。それほど人気があるのだ。これは日本と中国も同じである。
四君子は植物として園芸価値が高い古典園芸植物である。古典園芸植物の中に、済州の蘭は香りの高い寒蘭と小蘭、春蘭そして野生蘭が多く、蘭の宝庫とされる。また、竹も自生してよく育ち、梅もよく花を咲かせている。菊は山菊が漢拏山を香りで包み込む。
済州に四君子植物を植えれば、冬越しを気づかう必要もなくよく育つ。西帰浦市は寒蘭自生地として有名で、西帰浦市の市花が寒蘭になったのは70年代からだ。晩秋に催される寒蘭展示会は大変人気がある。また菊の季節なら、菊の展示で足が踏み場がないほどだ。早春の春蘭展示会は三国ともに大人気で、梅の咲く時期の祭りも人気が高い。このように絵は絵として、植物は植物として各国ごとに展示会が開かれて、展示会を観覧するためにかなりの人並みが押し寄せる。済州の石と蘭と竹、梅花と菊花が調和した景観の博物館を建てて、その博物館を四君子画で満たして観覧できるようにしたら、済州ならではの風光明媚な景色とともに、四君子芸術品が世界の宝石になるだろう。 

7) 博物館の活性化に向けた考慮事項
観覧客は韓国、日本、中国3ヶ国はもとより世界中の文人画を理解する人々である。彼らが望むものは、高尚な精神世界を反映しながらも、伝統が息づく芸術商品であろう。したがって、四君子博物館が第一に備えるべきことは、優秀な作品をたくさん収蔵することである。そして、観覧客が優れた作品をしっかりと鑑賞できるようにするためには、四君子に対する理解度が高く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
第二に、このために四君子の伝統と由来、素晴らしい画家、そして象徴性などを教育することのできるプログラムと場所が同時に設け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教育長を招いて直接教育し、作品を作る過程が見られる場所を設ければ、作品に対する欲求や好奇心が高まるはずである。
第三に、博物館には四君子植物と石とが調和した庭園を造って、それだけ鑑賞しても四君子を連想して愛情がわくような自然景観を整えれば、このうえなく素晴らしい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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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경희대학교에서 의뢰한 한일중 공통문화 활성화 번역(일본어번역)의 일부를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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