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사상 번역(한국어 번역본)유민(游民: 부랑자)은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와 사회 네트워크를 벗어난 무리이다. 고대 유민은 주로 종법(宗法) 가족과 주류사회의 유효한 통제를 벗어난 무리를 가리켰다. 그들이 사회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와 독특한 경력은 그들 무리 안의 성격의 독특성을 형성하였다. 이런 독특한 한 측면은 그들이 자신의 관념, 성격, 정서를 매우 적게 감춘데에서 크게 드러난다.1) 문명은 특정한 의미와 특정한 환경 아래에서 감추고 억제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봉건사회의 주류 의식인 유가사상은 “극기복례(克己复礼: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른다)”를 강조한다. 동물적인 범람(퍼져나감)을 억제하는 뜻이 있기도 하다. 순자(荀子)는 성선(性善)은 후천적으로 배우는 결과이며 사람의 선천적인 본성은 악이고 선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중 양국의 봉건사회의 문화 형태는 소농 생산을 경제 기초로 하고 지역, 종법을 연결 유대로 삼았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볼 때,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생산 발전 수준의 저하로 우매하고, 문화 보급 정도의 저하로 야만스럽고, 종법 집단의 배타성으로 패거리를 짓고 동당벌이(同党伐异: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의 사람은 물리침)하고, 소농목 생산으로 결정되는 눈앞의 실리에 역점을 두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난다. 유가사상은 종법 제도가 사상 의식 측면에서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런 극단, 우매, 야만에 대해 그리고 인성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억제하는 문화 형태에 대해 보호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영향을 주는 사상 유파에도 필연적으로 그 초월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인류의 항구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건강한 문화 요소가 있다. 유교(儒家)는 대동사회(大同社会)를 동경하며, 충서인애(忠恕仁爱)의 도리를 주장한다. 또한 “천하에는 모두가 형제다(四海之内皆兄弟)” 등을 강조한다. 고대 전통 문화가 찬란하지 않던 측면은 역대 선비에 의해 만들어진 “인애”, “충서”, “군자는 남을 이기려고 애쓰지 않는다(君子群而不党)”, “군자는 자신의 됨됨이에 대해 근심하지 자신이 부하고 가난한 것에는 근심하지 않는다(忧道不忧贫)” 등의 풍부한 시적인 정취의 환상에 의해 가려졌다. 유교에서 제창한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에 대해 충성하고 용서하라는 주장의 목적은 사람의 역할과 지위를 중요시하고 이탈하지 않도록 한데 있다. 이렇게 해야만 사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주류 사회에서 구체적인 사회적인 지위를 갖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역할의 권리와 의무를 이해한다. 사대부들은 자신의 사회 집단에서 역할과 위치를 중요시하고, 전통 사상을 이런 역할에서 규정한 모든 것으로 하여 엄격히 지킨다. 그런데 “사민(四民: 사농공상)” 중의 농민, 수공 공인, 상인은 재산과 일이 있어야만 그들은 종법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역할을 하고 의무를 진다. 유민은 이런 규정 하의 “사민(四民)”과 다르다. 그들은 주류 사회를 이탈하였고,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상실하였다. 많은 유민은 아내와 자식이 없고, 남편과 아버지의 직책이 없다. 또한 친족과 친구로부터 감독을 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근본이 없는 시대의 형세에 따라 떠돌아 다니는 무리이다. 그들은 지위가 없으며 사회의 존경을 상실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존하는 사회의 질서를 반대하고, 또한 사람들이 정한 각종 규정에 대해 역할과 위치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주류 사회의 각종 규범에서 만일 엄격하고 가혹한 형벌과 법령이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면, 유민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의 사상 의식과 행위의 표현은 강렬한 비규범성을 갖고 있다. 유민 사상 중의 반항형 이상 사회는 먼저 평등 원칙을 갖는다. 근대의 평등 원칙은 어쩌면 시장 경제의 산물일지도 모르며, 고대의 평등 관념과 관련해서는 묵가(墨家)에서 시작되었다. 묵가의 “겸애(兼爱)”는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동일시한다. 묵가의 견해로 보면, 천하는 한 집이고, 속세는 모두 길을 오가는 사람이며, 마음 속은 모두 형제이다. 이것은 그들의 평등에 대한 이해이다. 유민은 새로운 생활력 혹은 새로운 사회 관계를 대표하지 않으며, 또한 문화 지식이 부족하다. 새로운 사회 모델과 관련한 생각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회의 하층으로 하락하여 타인으로부터 업신여김과 능욕을 받기 때문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인간관계의 평등을 추구한다. “겸애”를 말하는 것 외에도, 유민의 “평등” 관념은 어쩌면 묵가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인지 모른다. 평등 관계는 봉건사회에서는 친구 관계일 때만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유민은 자신이 인간관계의 평등원칙를 추구한다고 표현할 때 주류 사회에서 숭배하는 유교를 벗어날 수 없다. 유민은 그들의 말을 자신의 사상 재료로 삼는다. 유가 오륜(五伦)은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친구이다. 주류 사회의 사람들이 앞의 사륜(四伦)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친구” 일륜(一伦)은 유민이 더욱 좋아하는 것이다. 가족 법제 제도를 벗어난 이런 유민은 사람들이 그들을 형제로 삼아 필요 시 서로 간에 돕기를 더욱 바란다. 그들은 첫 대면부터 옛 친구처럼 친해지고 서로 간에 도와주며 절친해진다. 그런데 이런 평등 사상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베풀어 지지 않는다. 탐관오리는 말할 조차도 없이 유민와 영웅이 공격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무고한 많은 평민 백성들도 항상 호걸들의 도끼와 칼 아래에서 죽는다. “수호전” 강호가 도장(法场: 승려들이 법사를 행하는 곳)을 약탈할 때 이규(李逵)는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큰 도끼를 흔들며 오직 사람을 치는 것만 생각하고”, 마음에는 겸애 관념이 없었다. 그러므로 평등 사상은 단지 자신과 상호간에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나 혹은 자신의 상호 도움을 주는 유민 집단에 들어간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상호간에 도움을 주는 집단은 의형제 맺기 방식으로 고정된 것이다. 부랑 조직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들은 상호간에 기본적으로 평등한 것이라 생각한다.2) 예를 들면, “량산포 108명의 호걸”과 “활빈당” 등이 그러하다. 이와 동시에, 사회의 지배하는 의식 형태에 맞추기 위해 세운 이상국가는 특히 충의를 강조한다. 특히 그 형성 과정에서 압박을 받고 모순이 매우 첨예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충의를 고수한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 밖으로 동떨어 졌지만 전통 문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반영한다. 위의 절에서 필자는 “수호전”의 량산 호걸들이 제창한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함(替天行道)”의 사상 의식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함(替天行道)”의 주제는 누구인가? 당연히 사회에 용감하게 맞서는 유민 영웅들이다.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함(替天行道)”의 목적은 “백성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민의 반역 활동에서 거의 모두가 민중을 대표하여 행세하는 것이다. 마치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걸고 사회에 대항하는 길을 걷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왕도주의(王道主义)”는 황제지존, 왕권지상(至上)의 관념을 가리킨다. 문명 사회에 들어선 후 군주는 사회의 최고봉에 올라 있다. 그의 관리와 백성은 각자의 지위에 따라 군주의 발아래 놓여 있다. 사람들은 “군권신수(君权神授)” 관념의 영향을 받아 군왕을 하늘의 총아로 간주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함(替天行道)”에서 “왕도주의”로 바뀐 것은 유민 지도자로부터 제왕까지의 사회적인 지위 변천의 결과이다. 후자는 고상함과 속된 것의 구별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 간의 간격은 멀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 근원은 자신을 믿는 개인 의지는 절대 자유의 활동 공간이 있어야 하고 또한 자유로운 확장의 절대 권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 결과가 절대적인 진리성을 가지며 하늘의 의지를 대표한다고 확신한다. 실제적으로 그들과 그들이 속한 집단은 자신의 특수한 이익이 있다. 그들은 이런 이익을 쟁취하고 실현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것은 본래 크게 비난할 것은 못된다. 그런데 그들이 항상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런 점을 감추고 그들의 모든 행위가 순수하다고 선전하는 것은 고통스런 재난에 빠져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회 반항이 고상한 것으로 변하였다.3) 사회에 반항하는 유민 집단에서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함(替天行道)”의 깃발을 높이 치켜 올렸으나 거기에는 “왕도주의” 사상이 결핍되었다. 유민 지도자는 땅바닥을 그려놓고 자신을 왕으로 삼고 엄격한 등급 분배를 진행하였다. 외적이 출현하면 “하늘을 대신하여 벌을 내린다(代天行罚)” 등을 제기하였다. 이런 점들은 “수호전”, “홍길동전” 등 통속적인 문예 작품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